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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에 속했었다. 조선 초엽 때는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주북면의 지역이었다. 북사리 남관리와 주남면 마구형리(馬口形里), 영암리(靈岩里), 고모리(古毛里) 및 죽전리 · 역티리, 피목동(皮木洞) · 학교리 · 하장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모와 영암의 이름을 따서 고암리라 해서 홍양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10월 1일 읍승격에 따라, 홍성읍 고암리가 되었다.

    1. 고모랭이 : 옛날, 비룡산(飛龍山) 아래 용천(龍泉)에 용이 살고 있었다. 아들이 자람에 따라, 그 아들을 따로 분가시키기 위하여, 아래 연못으로 보낼 때, 어미 용이 말하기를 용천을 떠나는 지금 네가 살아야 할 못까지 갈 때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으나, 새끼용은 한참 가다가 어미 용이보고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한다. 새끼용이 뒤를 돌아보자 별안간 천둥이 울리더니 새끼용에게 벼락이 떨어져 새끼용은 죽고 그 자리에 바위가 솟아 났다 한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새 끼용을 위로하기 위하여, 바위에게 제사를 지내 주며, 마을 이름을 고모령(顧母嶺)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변해서 고모령, 고모랭이 또는 고모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성최씨(花城崔氏)가 처음 살은 마을이며, 경주이씨(慶州李氏)들이 많이 산다.
    2. 영암(靈岩) : 신령한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영암 또는 영암리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바위 산신제도 지냈다 한다.
    3. 역재 : 조선 초에 세천역(世川驛)이라고 부르는 역이 있었다 해서, 역재 또는 역티라고 부르는데, 이곳에 있었던 역은 성종때 지금의 홍동면(洪東面) 세천리로 옮겨 갔다.
    4. 세계다랑이 : 구수고개 아래에 세계다랑이라고 부르는 논이 있다. 옛날에 이 논에 모를 심게 되면, 풍년이 들어 세계(稅契)가 내리고, 모를 못심게 되면, 흉년이 들어서 세계(稅契)가 오른다 하여, 표준(標準)을 잡았던 논이라, 세계다랑이라고 부른다.
    5. 구수고개 : 마구형의 말의 굿에 해당되는 지형이라, 구수고개라고 부른다.
    6. 역통(驛通) : 역으로 통하는 길가에 마을이 있다 해서 역통이라 부른다. 동경주(東京舟)라고도 부른다.
    7. 마구형(馬口形) : 마을 지형이 말의 입처럼 생겼다 해서, 마구형이라고 부르는데 온양정씨(溫陽鄭氏) 들이 많이 산다.
    8. 마살미 : 산의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 해서, 마살미 또는 마산(馬山)이라고 부른다
  •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에 속했었다. 조선 때는 초엽에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송지곡면(松枝谷面)의 지역으로서, 서구리(西龜里), 신동(新洞), 월천리(月天里), 천변리(천변리), 용지리(龍池里), 동구리(東龜里), 사성리(巳城里), 독귀리(獨貴里) 및 금동면(金洞面) 내기리(內基里)와 평면(坪面)내기리(內基里)의 각 일부를 병합, 동구(東龜)와 용지(龍池)의 이름을 따서, 구룡리(龜龍里)라 하여, 홍성군 홍동면에 편입외었다. 그러다가,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성읍으로 편입되었다.

    1. 구산(龜山) :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움츠리고 있는 모양이라, 구산이라고 부른다. 구산은 산세가 좋아서 명당 자리가 많다 하여, 예부터 지관들이 자주 드나들던 산이며, 예부터 명관(名官)들의 묘지로 많이 선택되었던 곳이다.
    2. 천변 : 마을이 냇가에 자리한 마을이라 천변이라고 부른다. 구산의 서쪽에 자리해 있다 해서, 서구산(西龜山) 또는 서구(西龜)라고도 부른다.
    3. 배암성(倍岩城) : 마을 뒷산이 배암처럼 생겼다 해서, 배암성 또는 사성이라고 부른다
    4. 동구(東龜) : 구산의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동구라고 부른다. 동구산(東龜山)이라고도 부른다.
    5. 용모랭이 : 옛날에 하늘로 승천을 못한 이무기가 살면서 많은 사람을 해쳤는데, 하루는 이곳을 지나던 어느 도승이 그 이무기를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서, 소금과 사금피리로 잡아 죽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에 속했었다. 조선 때는 초엽에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주남면(州南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상장리(上長里), 하장리(下長里), 남산리(南山里) 및 역티리의 각 일부와 주북면의 남관리(南官里) 일부를 병합, 남산과 상장 및 하장의 이름을 따서, 남장리라 하여 홍양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10월 1일 읍승격에 따라, 홍성읍 남장리가 되었다.

    1. 구름다리 : 옛날 하장리에는 서민들이 많이 있었고, 구름다리에는 양반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하장리 사람들이 구름다리를 지날 때면 굽신거리기가 싫어서 구름다리라도 타야겠다고 전해왔는데, 끝내는 구름다리가 마을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2. 남산리 : 남산 아래에 있다 해서, 남산리라고 부른다.
    3. 상장 : 장준이 위 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상장이라고 부른다.
    4. 장준이 : 남장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장중천 곁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장준이라고 부른다.
    5. 새말 : 마을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새말이라고 부른다.
  •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에 속했ㅇ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에 속했었다. 조선 초엽에는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성읍 홍천면(洪天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공암리(孔岩里), 법수리(法首里), 내기리(內基里) 및 봉수리(鳳首里) · 어경리(漁耕里) · 내동(內洞)의 각 일부를 병합, 내법리라 해서 홍성군 홍북읍(洪北面)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홍성읍에 편입되었다.

    1. 휘면동 : 마을이 후미진 곳에 자리해 있으므로, 휘면동 또는 후민동이라고 부른다.
    2. 회사뜸 : 지난 날에 금을 캐내는 채금회사(採金會社)가 자리하였던 마을이라, 희사뜸이라고 부른다.
    3. 집상굴(執喪窟) : 옛날 효자 한 사람이 이 곳에 아버지의 묘를 쓰고, 삼년간 집상하였던 골짜기라, 집상굴이라고 부른다.
    4. 집때울 : 마을에 집대가 있었다 해서, 집때울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해서, 방아굴 이라고도 부른다.
    5. 종장리(從長里) : 종쟁이라고도 부르는 마을인데, 마을에 자리한 집들이 띄엄 띄엄 산 아래로 쭉 뻗어있는 마을이라, 종장리 또는 종쟁이라 부른다.
    6. 솔모랭이 : 모퉁이에 소나무가 우거져서 운치를 돋구는 모퉁이로서, 소나무가 많은 모퉁이라, 솔모랭이라고 부른다.
    7. 법수 : 법수머리라고도 부르는, 마을에 숲이 많았던 마을이라 한다.
    8. 도토성이 : 조선 중엽에 이곳에 토성을 쌓고 돼지를 길렀다 해서, 도토성이 또는 저성(抵城)이라고 부른다.
    9. 공암(孔岩) :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다 해서, 공암 또는 구멍바위라고 부른다. 구멍바위가 자리한 마을도 바위지명에 따라, 공암 또는 구멍바위라고 부른다. 변해서 구매바위라고 부른다.
  •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에 속했었다. 조선 때는 초엽에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주북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주동(注洞), 종장리(從長里), 가좌동(佳佐洞), 대간동(大干洞) 및 향산리(香山里) ? 북사리(北社里) ? 교동(校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간동(大干洞)과 교동(校洞)의 이름을 따서, 대교리라 하여 홍양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10월 1일 읍승격에 따라, 홍성읍 대교동이 되었다.

    1. 종쟁이 : 종장리라고도 부르는데, 지형이 길게 뻗쳐있다 해서, 종쟁이라고도 부른다.
    2. 매봉 : 산에 매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해서, 매봉이라고 부른다.
    3. 교동 : 마을에 홍주향교가 있어서, 교동이라고 부른다.
    4. 간동(諫洞) : 옛날에 대간(大諫)벼슬을 지냈던 사람이 살았다 하여, 간동, 대간동(大諫洞) 또는 대간동 (大干洞) 이라고 부른다.
    5. 가재울 : 마을에 유명한 우물이 있어, 조선 선조 때, 홍주목사 홍가신이 이 우물의 위치가 홍주성 왼쪽이 된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에 속했었다. 조선 때는 초엽에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주북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갈마동(渴馬洞), 소동(昭洞), 월계리, 북촌리(北村里), 교동 및 향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 소동과 향산의 이름을 따서, 소향리라 하여 홍양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10월 1일 읍승격에 따라, 홍성읍 소향리가 되었다.

    1. 갈마지(渴馬池) : 마을에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 있다 해서, 갈마지라고 부른다.
    2. 향산(香山) :마을 한복판에 오래 묵은 향나무가 있다 해서, 향산이라고 부른다 한다.
    3. 시묘동(侍墓洞) : 옛날 어떤 효자가 시묘(侍墓)를 살았다 해서, 그후부터 시묘동 또는 시묘골이라고 부른다.
    4. 청기동(靑起洞) : 6 · 25동란 후, 이북에서 피난 온 피난민들이 모여서 푸른 꿈을 가지고 일어서야 되겠다는 뜻에서 청기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今州郡)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초엽에 홍주군에 속했다. 조선 때는 초엽에 홍주군(洪州郡)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주남면(洪州郡 州南面)의 지역이었다. 1914행정구역 개편 때, 송암리(松岩里) · 죽전리(竹田里 ) · 사성리 · 월천리 · 학교리(鶴嬌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