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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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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설화

역재방죽

홍성읍 고암리(古岩里)의 복판에 한 마을이 있어 역재라 부르는데, 이곳에 있는 저수지를 ‘역재방죽’이라 부르고 있다. 이 역재방죽 한가운데에 마치 망망대해(茫茫大海)의 섬과 같은 것이 있으니, 이것은 사랑하는 개 한 마리가 주인을 구해주고, 결국 목숨을 잃은 그 무덤이라고 전한다.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 홍주 땅에 동물을 지극히 사랑하는 한 농부가 있었다. 특히 그는 집에서 기르고 있는 한 마리의 개에 대한 사랑은 유난했다. 항상 개와 더불어 논밭에 나가고, 쉴 참 때면 되면 개와 같이 놀아주었다. 그래서인지 개 또한 농부를 너무나도 잘 따르고,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척척 해결하는 지혜를 가졌다. 그러니 농부와 개의 사랑과 복종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부는 개를 데리고 홍주성안의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옛 장날이란 원래 푸짐하기 이를 데 없어, 사람을 부르며 찾는 소리,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들로 가득 찼다. 또한 이웃 동네의 소식을 들으면, 한동안 적조했던 친구들을 만나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등 두터운 정을 나누기도 했다.

농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오래인 친구를 만나 함박웃음을 머금고 다정한 농담을 나누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또 기울이곤 했다. 한잔 술에 지나온 농사일이며, 가족소식이며 이웃소식을 건넸다. 때로는 반갑고 즐거운 소식에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에 한숨을 토해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사랑하는 개는 농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꼬리를 치다가 끙끙거리며 슬픈 표정을 짓곤 했다.

“그놈, 참. 사람의 말을 모조리 알아차리기라도 하는 것 같군!” 농부는 친구의 말에 개를 바라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암, 알아듣고 말구. 오히려 사람보다 더 영리하다네!”

농부는 친구의 개에 대한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개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기라도 한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농부의 곁으로 한결 다가가서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러나 농부가 이곳저곳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면서 차츰 취하는 모습을 보이자, 개는 고래를 가로젓기도 하고, 바지가랑이를 물어 당기기도 했다. 그러나 농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술을 마셨다. 땅거미의 행렬이 지나고 어둠이 온 세상을 덮어버릴 때에야 농부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농부의 두 다리는 이미 맥이 풀려 있었다. 어둠을 타고 귀가길에 올라 농부는 몇 번이고 넘어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개는 끙끙거리며 농부를 지켜주었다.

농부가 언덕길을 간신히 헉헉거리며 올라왔을 때에는 이미 두 다리의 힘은 완전히 빠져 있었다. 농부는 언덕의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끙끙거리는 개를 어루만지면서 깊이 잠에 빠졌다. 개는 농부의 틈에서 두 눈을 멀뚱거리며 농부를 묵묵히 지켜주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개가 농부의 품에서 빠져나와 큰소리로 짖어댔다. 그러나 그 소리는 단지 짖는 소리에 머물지 않았다. 숫제 애절한 외침이었다. 저 아래 언덕 밑에서 바람을 타고 번져오는 불길을 보았던 것이다.

개는 농부의 주위를 돌면서 마구 짖어댔다. 그러나 농부는 미동조차 안하고 드르렁 드르렁 코만 골았다. 애타게 짖어대는 소리도 농부의 코고는 소리를 막지 못했다. 개는 있는 힘을 다하여 농부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졌지만 코고는 소리는 여전했다.

바람을 타고 번지는 불길은 더욱 거세어졌다. 개는 한동안 울부짖다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에서도 희부연 하게 비추이는 것, 그것이 물이라는 것을 개는 쉽사리 알아차렸다. 곧 온 힘을 다해 그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몸을 던졌다. 몸에 돋아난 털이 물에 젖자 재빨리 빠져나와 다시 농부에게로 달려왔다. 농부의 얼굴이며 두 팔에 젖은 몸을 문질러대었지만 농부는 깊은 잠에서 헤어날 줄을 몰랐다. 번져오는 불가를 원망스레 바라보던 개는 다시 몸을 날려 물 속에 뛰어들었다. 온몸을 적시고 나선 농부의 주위를 마구 뒹굴었다. 메마른 잔디에 차츰 물이 스며들었다. 몇 번이고 개는 몸을 날려 물 속을 드나들면서 잔디를 적셨다. 번져오던 불길이 물에 젖은 잔디 위에서 기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개는 신이 났다. 그래서 더욱더 빠른 달리기로 물 속과 잔디밭 사이를 내달았다.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지, 개의 몸놀림이 차츰 둔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가쁘게 몰아쉬어졌다. 네 다리가 가볍게 떨리기도 했다.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개는 여전히 지친 몸으로도 물을 털에 묻혀 잔디 적시기를 멈추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농부의 근처에까지 다가오던 불길은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개는 그것을 바라보며, 컹컹 어둠을 향하여 짖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개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나자 동쪽 산기슭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농부는 그제야 온몸에 엄습해오는 한기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다가 농부는 두 눈을 크게 든 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새까맣게 타버린 잔디밭 저만큼에 새까맣게 그을린 개가 쓰러져 있지 아니한가?

정신을 바짝 차린 농부는 곧 그리로 달려갔다. 온몸을 검게 그을린 개는 확실히 그토록 사랑하던 자기의 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울컥 가슴으로 치밀어 오르는 슬픔 한 덩이를 삼켰다. 그리고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신이 조금 전에 벌떡 일어난 자리를 제외하곤 온통 불에 탄 을씨년스러운 모습뿐이었다. 아, 하고 농부는 가볍게 신음을 토해냈다.

“오, 내가 잠들어버린 사이에 사랑하는 나의 개는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 나를 구해 내었구나!” 두 눈에서 어느덧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프고도 슬픈 일이었다. 아무리 굵은 눈물을 흘려보아도 새까맣게 그을린 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아니했다. 모처럼의 반가운 친구라 하여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미웠다. 농부는 굵은 눈물을 주먹을 쥐어 훔쳐내고는 말없이 윗도리를 벗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개의 온몸을 정성스럽게 쌌다.

농부는 죽은 개를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언덕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방죽을 향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차츰 솟아오르는 햇살 속에서 농부는 방죽으로 향하는 고샅길에 여기저기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하였다. 이곳저곳 발자국에 패여 드러난 검은 흙덩이를 보고서 자기가 잠든 사이에 얼마나 사랑하는 개가 치달아 오르내렸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농부의 발걸음을 방죽가에 와서 멈추었다 .묵묵히 농부는 방죽을 바라보았다. 방죽의 한가운데에는 조그만 섬이 있었다. 농부는 곧 그리고 향하여 헤엄쳐 들어갔다. 그리곤 등에 얹힌 사랑스러운 개의 시체를 섬 가운데 묻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도 더욱 굵은 눈물이 연이어 흘러내렸다.

그로부터 농부는 매년 한 번씩 방죽의 섬을 찾았다. 바로 사랑하는 개가 불에 타서 죽은 날이었다. 그때마다 농부는 광주리에 가득 맛있는 음식을 담아가지고 와서는 개의 무덤 앞에 정성스럽게 차려놓곤 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방죽을 이름하여 개방죽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근처에 역이 생기게 되자 역재방죽, 또는 역개방죽이라 하고, 개가 묻혀있는 섬을 개섬이라 부르면서 먼 옛날의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