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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이응노의 집

연보

고암 이응노 사진

고암 이응노

顧菴 李應魯 : 1904. 1. 12. - 1989. 1. 10.

이응노는 1904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자신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갔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한국 회화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찾아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는 정통성과 현대성을 함께 갖춘 현대 한국화단의 진정한 증인이자 거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전통 위에 서양의 새로운 방식을 조화롭게 접목한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체제와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사회의식 그리고 항상 새로움으로 향해있는 열린 사고는 이 시대 작가들의 귀감입니다.

1904
1904 ~ 1928
  • 1904

    [01세] 충청남도 홍주군 홍천면 중리(지금의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에서 5남 1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다.

  • 1910

    [07세] 서당 훈장인 부친으로부터 한문과 서사를 익히다가, 홍성보통학교에 입학하다.

  • 1919

    [16세] 부모가 정해 준 대로 경기도 이천 태생인 한월희와 결혼하다.

  • 1920

    [17세]부친과 평소 친교가 있던 충남 당진의 서화가 염재 송태회(念齋 宋 泰會) 문하에서 몇 달 간 문인화의 기초를 배우다.

  • 1922

    [19세] 서울로 가다. 서화가 해강 김규진(海崗 金奎鎭) 문하에서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사군자 등 전통 문인화와 서예를 익히다. 전통 대나 무 화법에 일가를 이뤄, 스승 해강에게서 ‘죽사(竹史)’라는 첫 호를 받다.

  • 1924

    [21세]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에 <청죽>을 출품해 첫 입선하다.

  • 1927

    [24세] 두 번째 부인으로 대전 태생의 박귀희와 결혼하다.

  • 1928

    [25세] 공주, 대전 등지에서 활동하다 전주 중앙동에 정착하여 ‘개척사’라는 간판집을운영하다. 전주에서살던시기에 묵죽을쳐서스승해 강에게 보이고, 난·죽·매 등을 연구하는 한편, 해마다 조선미술전 람회에 출품하다.

1931 ~ 1954
  • 1931

    [28세]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에 출품한 <청죽>이 특선, <풍죽>이 입선하다. 이후 1934년까지 연속 입선.

  • 1933

    [30세] 한학자 규원 정병조(葵園 鄭丙朝)에게 호 ‘고암(顧庵)’을 새로 얻다.

  • 1935

    [32세] 일본 도쿄로 건너가다. 일본인 화가 마츠바야시 케이게츠(松林桂 月)가 운영한 덴코 화숙(天香畵塾), 혼고 양화 연구소(本鄕洋畵硏 究所), 가와바타 미술 학교(川端畵學校)에서 서양화와 동양화를 두 루 배우다. 같은 시기에 요미우리 신문 배급소에서 일하다.

  • 1945

    [42세]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이르러 해방 직전에 귀국하다. 예산 수덕사 밑수덕여관을 인수하고부인박귀희와머물다. 해방후 동생이흥노에게 수덕여관 운영을 맡기고 서울로 올라가 고암화숙을 개설하 고 조선서화동연회, 단구미술원 설립에 참여하다. 이 시기 일본 화 풍을 극복하고 우리 화맥을 계승하여 전통을 재창조한다는 당면 과 제를 내세우다.

  • 1948

    [45세] 홍익대학관(지금의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주임 교수로 부임하다. 같은 시기 여러 곳에서 개인전, 초대전, 단체전을 열다.

  • 1949

    [46세] 서울태생의 박인경을 만나 세번째부인으로 맞이하여 같이살다. 양자로 융세를 들이다.

  • 1950

    [47세] 6.25전쟁이 일어나 부인 박귀희 사이에 양자로 삼은 아들 문세가 의용군으로 끌려가다. 남은 가족을 이끌고 수덕여관에 피난하다.

  • 1954

    [51세] 서라벌예술대학(지금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출강하다. 대한 민국미술대전(국전)의 폐단을 비판, 초대 작가를 거부하다.

1956 ~ 1969
  • 1956

    [53세] 저서『동양화의 감상과 기법』(문화교육출판사)을 출간하다.

  • 1957

    [54세] 뉴욕의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주최한 한국현대미술전에 <출범>과 <산>을 출품하다.이두작품을미국록펠러재단에서구입해뉴욕 현대미술관(MoM A)에 기증하다. 국제미술평론가협회(A IC A) 프 랑스 지부장 자크 라세뉴( Jacques Lassaigne)가 파리 이응노 개인전 을 주선하여 초청받다.

  • 1958

    [55세] 3월에 도불(渡佛) 기념 개인전(중앙공보관, 서울)을 개최하고, 12 월 26일에 유럽으로 출국하다.

  • 1959

    [56세]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 쾰른 등에 1년간 체류하며 순회전을 열다.

  • 1960

    [57세] 프랑스로 건너와 파리에 정착하다. 폴 파케티 갤러리(Galerie Paul Facchetti) 단체전에 참여하고 전속 계약을 맺다. 궁핍 속에서 버려 진 잡지와 폐품을 주워 콜라주(collage) 기법의 작품을 제작하며 프 랑스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다.

  • 1962

    [59세] 서울 중앙공보관과 파리 폴 파케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 1963

    [60세] 스위스 라 쇼드퐁 시립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La Chaux-de-Fonds)에서 초대전을 갖다.

  • 1964

    [61세] 스위스 오베르니에의 누마가 갤러리(Galerie Numaga)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11월, 프랑스와 중국, 일본, 한국의 문화계인사들의 후원 속에서 파리 세르뉘쉬 미술관 (Musée Cernuschi)에 파리동양 미술학교(L’Académie de Peinture Orientale de Paris)를 설립하다.

  • 1965

    [62세] 브라질에서 개최된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다.

  • 1966

    [63세] 덴마크 코펜하겐 국립미술관(Statens Museum for Kunst)에서 개인 전이 열리다.

  • 1967

    [64세] 의용군으로 끌려간 아들 소식을 들으러 동베를린에 있는 북한 대사 관에 여러 차례 방문하다. 7월, ‘동백림 사건’ (동베를린 간첩단 사 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 대전·안양 교도소에 수감되다. 옥중 에서도 휴지와 밥을 이용해서 계속 작품을 만들다.

  • 1967

    [66세] 3월, 형집행정지가석방으로 옥중작 300여점을 가지고 나와 수덕 여관에서 다시 머물다. 요양중 너럭바위에 문자 추상암각화를 새기다. 5월, 프랑스로 돌아가다.

1970 ~ 1988
  • 1970

    [67세] 프랑스 르 바르카레스(Le Barcarès)의 사브르 미술관(Le Musée des Sables, Allée des Arts) 개관에 맞추어 야외 조각을 제작하다. [작품은 영구 설치되었다.]

  • 1972

    [69세] 프랑스 국립 가구 연구원(Mobilier national)에서 타피스트리 원형(밑그림)을 의뢰하고 매입하다.

  • 1976

    [73세] 파리에 고려화랑을 개관하다. 이후 고려화랑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다.

  • 1977

    [74세] 윤정희 백건우 부부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되다.

  • 1978

    [75세] 스위스 라 쇼드퐁 시립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다. 파리에서 동양화 교습서 『수묵담채화법(L’art de Peindre a l’encre de Chine)』을 출간 하다.

  • 1980

    [77세] 한국에서 발발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럽 언론을 통해 접하고 <군상> 시리즈를 제작하다.

  • 1982

    [79세] 프랑스 세브르 국립 도자 공장의 의뢰로 작품을 제작하다. 프랑스 국립 가구 연구원에 타피스트리 도안이 소장되다.

  • 1983

    [80세] 10월,프랑스에귀화하다.[1985년국적상실신고]

  • 1985

    [82세] 일본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현민홀 갤러리(神奈川県民ホールギャラ リー), 도쿄의 산요갤러리(ギャラリーさんよう) 등에서 이응노 박인 경 부부 순회전이 개최되다. 더불어 일본에서 이응노·박인경·도 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 대담집 『이응노—서울, 파리, 동경(그림 과 민족에 대한 사색)』(기록사, 도쿄)를 출간하다.

  • 1986

    [83세]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나라·ウリナラ』(16mm,40분)가 일본에서 제 작되다. 북한을 방문,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서 개인전이 열리다.

  • 1988

    [85세]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의 혐의가 풀림에 따라 국내 미 술계 인사들이 초청 전시를 준비하다.

1989
  • 1989

    [86세] 서울호암미술관에서전시가개최되다. 1월10일, 귀국을 앞두고 파리 아비센느 병원(Hôpital Avicenne)에서 심장 마비로 별세하다. 파리 시립 페르 라세즈 묘지(Cimetiére du Père Lachaise)에 안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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