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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중심이자 상징인 조양문이 보인다. 조양문을 바라보며 왼쪽 길로 쭉 들어가면 홍성군청이 나오는데 정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아문인 홍주아문이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
홍주성은 사적 제231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주성을 한눈에 조망하기에 좋은 곳은 홍주성의 남문인 홍화문이라는 안내에 그리로 향한다.
홍주성의 풍수지리는 ‘천둥이 땅에 떨어지는 형세‘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참 싸움이 잦기도 했다.
물론 이곳은 충청도 서부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인 ‘내포‘이니 무슨 사건이 발생하든 홍주성은 가장 먼저 점령해야 할 타겟이었다.
대부분 자꾸만 쳐들어오는 것은 일본이었다. 고려 시대부터 16차례나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참 징글징글하다.
홍주성은 기록상으로 원래 1,772m였으나 현재 남은 길이는 810m 정도이다.
이것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서문과 북문을 철폐하고 성곽을 허무는 것을 홍주읍민들이 강하게 저항하여 이만큼 남은 것이다.
원래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웅장했을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홍주읍민들의 저항정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올라 이 멋진 홍주성을 볼 수 없었다. 홍성의 역사와 홍성인들에게 고마움이 밀려온다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었는지 홍주성은 남쪽에서 나쁜 기운이 들어온다 하여 그것을 막기 위해 남쪽에 소나무로 숲을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이 송림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 가장 높은 곳에 정자인 송정을 세웠지만 1922년 일제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신명신사를 짓고 홍주 주민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다고 한다. 물론 광복 후 헐어버렸다.
그 자리에는 지금 소나무들만이 묵묵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는 특별하다. 나쁜 기운까지도 막아준다 하였을 뿐 아니라 민족정신으로도 알려졌다.
애국가에서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국민의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소나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으리라. 가만히 언덕에 앉아 푸르른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와 가슴이 상쾌해진다.
송림 근처로 병오항일의병기념비가 보인다. 광복 전 여기에는 사실 영 탐탁지 않은 비석이 무려 36년 동안이나 세워져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친일 앞잡이 매국노 이완용이 이곳에서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항일의병들에 의해 죽은 일본군을 기리는 글을 새겨 애도비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광복 후 사람들은 이 비를 부숴 땅에 묻고, 진정으로 후세까지 길이 남겨야 할 병오항일의병기념비를 세웠다.
일그러질뻔한 역사를 제대로 다시 세웠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주변은 홍주의병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친일파 관련자들이 자꾸만 텔레비전에 나와 잘 먹고 잘 사는데 어서 청산되길 바란다.
찝찝함이 여전히 계속 남아있다.
홍화문 근처에는 5개의 비석이 모여있다. 그중 가장 앞쪽에 있는 비석은 홍주성수성기적비로 원래는 홍성읍 고암리에 있었는데 순조 24년에 홍주성을 고쳐 지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 비석은 홍주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안고 있다. 이것을 보면 홍주성이 황폐한 것을 언제 알고 어떻게 몇 날 동안 공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비의 뒷면에는 공사를 감독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도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비석의 내용 중 인상적인 대목은 ‘백여 일 동안 공사를 하면서 백성들이 부역함에 괴롭다 하지 않고 즐겁게 생각하며 정성을 지극히 들였다‘는 것이다.
그 말이 진실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홍성 주민들은 홍주성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선조들의 진심이 성의 구석구석 녹아있다.
또한 홍주성 수성비 옆으로 4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것은 조선 시대 홍주 목사들의 선정비를 모아놓은 것인데 홍성 곳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수성비와 함께 한곳에 모아두었다.
어질고 청렴한 목사들이었기에 여전히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비석군 근처에 웬 돌덩이들이 나무 밑에 널브러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찰 부재이다.
조선 시대 초기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전국의 수많은 절이 사라졌다. 그렇게 부서진 사찰의 석탑들로 성곽의 벽을 짓는 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들은 현재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 존재했던 광경사 석탑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의 슬픈 역사의 흔적이 이곳에 쓸쓸하게 놓여있다.
가까이에 있는 남문, 홍화문을 올랐다. 내가 방금 본 것들을 멀찌감치 내려다보고 싶었다. 가까웠던 역사를 멀리서 조망하는 기분이 든다.
가까이에 있는 남문, 홍화문을 올랐다. 내가 방금 본 것들을 멀찌감치 내려다보고 싶었다. 가까웠던 역사를 멀리서 조망하는 기분이 든다.
나쁜 일은 한 번에 일어난다고들 한다. 그것을 견뎌냈을 때 주어지는 대가는 보통 평범함이라는 행복이다.
지금의 홍성이 있기까지의 희생이 이 평범한 일상을 만들었겠구나. 소나무 사이를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