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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중학교 시절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에 동창회 겸 홍성에서 모이자는 연락이었다.
낯설기도, 반갑기도 한 친구의 연락에 내 고향 홍성으로 향한다. 김좌진 장군상이 가리키는 곳의 카페에서 십여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지금은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몇 년 만에 와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결혼해 홍성에 정착한 친구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과 예전과 달라진 성향 때문일까 조금은 낯선 친구들의 느낌이 번갈아 가며 공기를 메웠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이 아직 그 학교에 있다는 이야기, 다음 달에 인도로 장기출장을 떠나는 친구, 임신하고 첫 아이를 출산한 이야기 등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분위기를 달구었다.
하하호호 신나는 수다들 속에 홍성에 정착한 한 친구가 "오늘 며칠이지?" 하며 핸드폰 날짜를 확인한다.
"오늘 1일이네, 오일장 서는 날! 내가 오늘 어묵 핫바 쏠게. 일어나자!"
도대체 어떤 어묵이길래 이 친구가 이러는 걸까. 맛집에 갈 때면 항상 맛있을지 맛없을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갖고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홍성 오일장 구경을 간다.
카페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부터 오일장이 서 사람들로 붐볐다.
단감이 한 바구니 잔뜩 채워져 있고, 흙도 채 털지 않은 무 다발이 싱싱함을 자랑하고, 제철 대하가 수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상인들의 밝은 얼굴과 이것저것 구매한 물건을 들고 가는 손님들로 홍성 오일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시장 입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어묵 핫바집이 있다고 하는데, 벌써 길게 줄이 서 있는 게 보인다.
노릇하게 튀겨진 어묵은 기본형, 치즈, 맛살, 가래떡 등 다양하게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다 달라서인지 서로 다른 맛을 선택하여 먹었다.
케첩과 머스터드를 뿌리냐 안 뿌리냐로 갈등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어찌 되었든 그냥 먹어도 맛있고, 뿌려 먹어도 맛있다.
홍성지역의 대학생들이 과점퍼을 입고 줄을 서 있는 모습도 귀엽고, 집에 반찬용으로 사 가시는 어르신의 모습에서는 엄마 생각이 났다.
어묵꼬치를 하나씩 들고 오일장의 풍경으로 들어간다. 시장 규모가 굉장히 크다. 어릴 때는 홍성장의 큰 규모에 놀라 엄마 손을 더 꽉 잡았던 것 같다.
홍성 전통시장은 1943년에 처음 문을 연 후로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시장이 성 밖에 형성되었는데 홍주는 드물게도 홍주성 안에 장터가 형성되어 지금의 홍성 전통시장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홍성전통시장은 7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사람 냄새로 북적 이는 시장이다. 1, 6일이 되면 오일장이 서기 때문에 더 북적 인다.
게다가 홍성전통시장은 천수만의 풍부한 해산물과 내포 평야의 질 좋은 임산물이 가득해 예로부터 다른 지방 사람들도 많이들 찾았다고 한다.
어묵 핫바를 먹고 예전부터 유명했던 시장 만둣집에 가서 잔치국수랑 만두를 시켰다.
옛날 그대로 그때 그 할아버지가 굽는 호떡과 만두, 그리고 만두를 시키면 주는 배추 된장국이 참 별미이다.
진한 멸치 내음이 가득한 배춧국과 잔치국수를 먹으니 벌써 오일장의 먹거리를 점령한 것만 같다.
가만 보니 홍성 오일장 풍경은 다른 시장과 달리 시장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없다.
손님이 와도 아는 체도 안 하는 모습이 쿨하면서 충청도 양반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풍경이다.
충청도식 유명한 유머 중에 손님이 수박을 싸게 해달라고 흥정하면 ‘냅둬유, 소나 갖다 먹이지‘라는 게 있는데 홍성 오일장의 풍경과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 넉넉한 정은 가득하다. 만둣집 주인이 배춧국 한 그릇을 그새 더 내어주셨다. 배불러도 먹어야지. 정을 주셨는데….
주전부리로 배를 채우고 친구들과 시장구경을 할 겸 어물전으로 향했다. 비릿하면서도 신선한 해산물 내음이 진동한다.
제철인 대하들이 수조에서 손님의 지갑을 열게 하려는 듯 춤추고 있다. 홍성 토박이 친구가 대하를 보더니 남편과 자주 가는 시장 식당이 있다고 흥분한다.
"대하를 사 가면, 요리를 해줘."
무슨 말인가 했더니 홍성 시장 식당 몇 곳에서는 육선상차림이라고 해서 고기나 해산물을 사가면 1인 6000원이라는 차림비를 받고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무슨 만화에서나 보던 이야기 같다. 얼마나 신기한가. 고기를 먹고 싶은 날, 생선을 먹고 싶은 날이 다 다른데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니.
게다가 솜씨가 좋은 분이 해주는 맛은 더 좋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며 남당항에서 건졌다는 대하와 제철 해산물을 여러 개 사서 식당으로 향한다.
시장에서 솜씨 좋기로 유명한 식당 주인분이 대하를 회랑 구이로 내주신다고 하니 먹기 시작도 전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맛깔 나는 갖은 반찬들이 깔리고 술 한 잔과 재잘거리는 수다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여럿이 함께해서 맛있기도 하지만, 시장의 공기만이 가진 매력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대하회와 구이를 맛보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쌓았다.
다음 달 인도로 장기출장을 가는 친구가 소머리국밥 타령을 하기 시작한다.
먹지 못하는 곳이니 더 먹고 싶다며 홍성시장에 유명한 소머리국밥을 꼭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나도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내심 구수한 국밥이 먹고 싶었다.
그렇게 대하회와 대하구이를 먹고도 고깃국물 배를 따로 남겨둔 건지 우리는 국밥 골목으로 향한다.
홍성이 한우로 유명한 것은 전 국민이 알 것이다. 얼마 전에 매스컴을 타서 그런지 국밥 골목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60년 한 집도, 70년 한 집도 모두 홍성 한우의 역사와 함께 한 곳들이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소머리국밥과 안 먹으면 섭섭한 소머리 수육을 한 접시 시킨다.
소머리와 사골을 푹 삶아 우려낸 국물에 쫄깃한 고기들이 적당하게 토렴되어 나온다.
얼큰하게 다대기를 풀어 먹어도 좋고, 뽀얀 국물 그대로 먹어도 좋다. 소머리 수육은 머리가 크고 나서 처음 먹어보는데,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맛이다.
나는 이제 소머리 수육 먹는 여자다. 뭔가 우쭐대는 기분으로 고추냉이 풀은 간장에 살짝 찍어 한 점을 입에 더 넣었다.
쫄깃한 머리 고기랑 우설, 코빼기 살들이 섞여 한 접시 가득하다. 수육 한 접시의 무엇을 골라 먹어도 맛있다. 벌써 피부가 좋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누군가 소머리 수육은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면, ‘홍시 맛이 나니 홍시 맛‘이라고 한 장금이처럼 ‘수육 맛은 수육 맛이라고 왜 수육 맛이 나냐고 물으시니 그냥 먹어보시라고…‘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멋진 맛을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니 더 좋을 수밖에….
국밥을 먹고 난 후 현대식으로 개조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머리 위로는 보부상 조형물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반긴다.
그들이 줄지어진 곳에 ‘문전성시‘라는 카페 겸 안내센터가 있다.
홍성전통시장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중심에는 상인들의 정성과 노력이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2011년부터 시행한 문화관광형 전통시장 사업의 일환인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거듭났으며 현재는 홍성 관광두레 사랑방 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곳에선 커피나 차를 마시며 천년여행길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동네 시장 상인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곳이며, 여행객에게는 피로를 풀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한다.
우리는 천 원하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시켰다. 맛과 분위기에 취해 과식했더니, 몸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오늘 먹은 음식은 모두 0칼로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곧 오늘 장날에 튀긴 거라며 쌀과자를 주신다. 힘이 있나. 맛있는 건 먹을 수 밖에…
이곳의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왜 시장 내 사랑방이라고 불리는지 알게 해준다. 이렇게 우리들의 알찬 시장 먹부림을 마무리한다.
사람이 있어야 장이 선다고 했던가. 시장은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고, 정(情)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