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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꼬마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꼬마가 보고 있는 건 대교리 석불입상으로 충남문화재자료 제87호이자 홍성전통시장 보물 1호이다. "세상에… 우리 아들, 겉모습으로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었구나. 이 미륵불이 시장 불도 꺼주고 사랑도 이뤄줬는걸?" "그렇구나. 맞다. 만화에서 봐도 보물들은 뭔가 다 먼지 쌓이고 낡았었어. 나도 소원 빌래!" 꼬마는 엄마의 능청스런 설명을 들으며 갑자기 만족하는 듯했다. 보물인 듯 아닌 듯 애매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70년 넘게 이어져 오는 홍성전통시장이 자랑하는 보물 10가지를 만나보자.
그 첫 번째가 바로 ‘대교리 석불입상‘이다. 꼬마의 엄마 이야기대로 이 미륵불은 오랜 시간 시장과 함께하며 지켜주고 있다고 한다. 화재나 거친 날씨 같은 심각하고 커다란 문제부터 개개인의 자잘한 고민까지 귀를 기울여주는 고마운 보물이다. 그래서 홍성 상인들과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 되면 미륵제를 지내며 미륵불에게 인사를 전한다. 또 소원목이라는 것이 있는데 소원을 빌고 싶다면 홍성전통시장의 사랑방인 문전성시에 신청해서 소원목에 소원을 적어 미륵불에게 올릴 수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찾아야 할 것은 보물 제2호인 모루와 나무통이다. 이건 어디에 있을까? 짧은 고민이 무색하게 시장을 잠깐 걷다 보니 소리가 들려온다.
뚱! 땅! 뚱! 땅! ‘나야 나! 여기야! ‘라고 들리는 것 같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충남 무형문화재인 모무회 대장장이 진중한 눈빛으로 망치질하고 있다. 불꽃이 튀어대는 와중에도 대장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간다.
가만 보니 대장장에게 만져지고 있는 쇳덩이가 내가 찾고 있던 보물을 오간다. 모루 위에서 다듬어지고 나무통에 담긴 물에서 식혀진다. 물론 활활 타오르는 불가마에서 먼저 달궈져야 한다. 물이 마를 날이 없는 나무통은 물에 불은 나무가 틈을 메워 물이 새지 않는다고 한다. 모루는 옛날에 쌀을 몇 가마나 줘야 했을 만큼 비쌌다. 비싼 만큼 오랜 시간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불과 함께 움직이는 대장장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르신들은 신나는 얼굴로 대화하며 보신알을 깐다. 그 옆에는 소주가 한 병. 5개에 천 원인 저렴한 가격으로 노화방지와 신경통에 효과가 있고 정력까지 좋아질 수 있는 착한 영양덩어리인 이름 그대로 보신알. 곤계란이라고도 하는데 병아리가 되지 못하고 부화 중 죽어 나온 계란을 말한다고 한다.
친절한 사장님은 보신알을 사러 왔든 구경 왔든 관계없이 친절하게 아궁이 위에서 삶아지고 있는 따끈한 보신알을 구경시킨다. 사장님의 인상만큼 보신알은 그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가 섞여 퍽퍽하지 않은 부드러운 맛으로 먹어본 사람은 끊질 못한다고 한다. 병아리 형체가 생긴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해서 ‘생긴 것‘과 ‘안 생긴 것‘으로 주문할 수 있다. 작지만 운치 있고 따뜻한 곳의 인상적인 보물이다.
사장님은 40여 년 전 서울 청계천에서 만난 이 재봉틀의 유혹에 못 이겨 당시 8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 과연 몇 살일까. 오래 써 온 만큼 이제 다른 기계는 어색해서 손에 익은 이 재봉틀만을 고집하게 되었다는데 그 세월만큼이나 이제는 가족과도 같아진 걸까. 분명 차가운 기계일 텐데 홍주천막에서 재봉틀은 왠지 편안한 표정으로 쉬고 있는 노련한 장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홍성전통시장의 여섯 번째 보물 ‘뽕뽕다리‘를 마주하자니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옆에 뽕뽕다리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이 건너도 된다고 하니 믿어보자 싶다. 그리고 건너다 떨어져도 크게 다칠 것 같진 않으니 그냥 가보자.
덜컹거리는 철판에 온몸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간다. 뽕뽕 뚫린 구멍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10여 미터 길이의 다리를 건너고 나니 의외로 튼튼한 것 같다는 안심이 든다. 이 뽕뽕 구멍이 뚫린 철재는 예전에는 전국적으로 많이 다리로 애용했다고 한다. 적어도 튼튼하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두 명이 건너는 건 무리인 좁은 다리에서 일부러 마주치며 우연을 가장한 로맨스를 꿈꾸던 사랑꾼들도 있지 않았을까. 홍성 사람들의 추억이 가득할 재미있는 다리이다.
과거 지금과 또 다른 행복으로 가득했던 활발한 옛 정취가 풍겨온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홍성은 그 어느 곳보다도 물건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정해진 날에만 만날 수 있기에 특별했을 만남은 얼마나 많았을까. 세상을 떠돌던 보부상에게 기다리던 건 특별한 물건들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보따리에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가득했겠지.
어느 마을에서 귀신이 나타나 사또들이 계속 죽어 나간다거나 어느 마을에서는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사람이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생선이며 비단 등을 내어놓았을 것이다.
200m 남짓한 길이의 벽화를 걷는 동안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임에도 어딘지 익숙한 포근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꽃상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며 누리는 최고의 호사였다고 한다. 시신은 장지로 운반되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을 갖게 된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꽃상여를 꾸민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간 고인에 대한 살아남은 가족들의 마지막 선물이다.
지금은 꽃상여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 홍성꽃상여가 그 증거이기도 하다. 2대째 초상, 제사 관련 작업을 하며 고인을 위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슬프지 않을 죽음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에 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위로가 큰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홉 번째 보물인 되를 찾으러 관성상회에 가니 재밌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했다. 관성상회는 쌀과 곡물을 내어놓고 판매하는데 그곳에서 참새들은 쌀을 쪼아먹고 있었다. 인심 좋은 얼굴로 사장님은 참새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시장 인심은 동물에게까지 퍼져있구나. 어쩐지 사랑스러운 순간이다.
문득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깨닫고 보물인 되를 찾았다. 저울이 있어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되는 과거 유물로 남아있었다. 옛날이라면 저 통통한 참새가 되를 자기 밥그릇인 양 앉아 쪼아먹었을지 모르겠다. 몸보다 큰 밥그릇을 탐하며 쪼아먹고 있을 참새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자칭타칭 홍성전통시장의 터줏대감 대승철물에 마지막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 돈괘가 이곳에 있다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주인인 할머니의 아버지 때부터 대승철물이 존재했고, 할머니는 12살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으니 돈괘는 60여년 동안 돈을 담아온 셈이다. 이곳이 아무래도 가장 오래 돈을 벌어온 가게가 아닐까.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얼마 전 해체되어 전시용으로만 투명한 상자에 담겨있다. 오랜 시간 열심히 일을 해왔으니 이제 쉴 때가 됐나 보다. 수십년 동안 쓰다듬으며 소중히 돈을 담았던 돈괘를 해체할 때 사장님의 마음은 어땠을지... 내 나이만큼이라도 된 물건이 내게는 뭐가 있을까. 함께 세월을 살아가는 것은 꼭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정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만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